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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칼럼니스트의 K9 시승기

2022/11/22

요즘 들어 새삼 느끼는 일이지만 세상이 참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1월 15일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어릴 때 세계 인구가 40억 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40년 만에 두 배가 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인류가 번성하게 된 계기로 도구의 사용,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근대 산업 혁명을 꼽는다. 특히 최근의 폭발적인 증가는 의학을 기초로 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10여년 전 처음 선보인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고, 100여년 넘게 세상을 지배한 내연기관 자동차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으로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반가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혹은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은 간단했다. 키오스크로 바뀌어 직접 결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거꾸로 말하면 첨단 기술이 실제 사람들 편하게 하려면 만드는 사람들의 더 큰 고민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아의 플래그십 모델인 K9을 만났다. 그간 도로를 달리며 만난 K9은 당당했다. 요즘의 대형, 혹은 중대형 세단들은 매끈함과 젊은 느낌, 스포티함을 내세우다 보니 루프 라인이 뒤로 물러나 쿠페 같은 모습이 된다. 반면 K9은 풍요로운 볼륨감 안에 정통 세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정면에는 굵은 선으로 감싼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당당하다. 특히 옆에서 보았을 때 엔진룸과 캐빈룸, 트렁크 등 세 개의 박스가 명확한 풀사이즈 세단의 모습을 갖고 있다. 앞 펜더와 도어 아래를 수평으로 잇는 메탈 가니쉬는 이런 느낌을 더 강조한다. 높은 트렁크가 자칫 둔해 보일 수 있는 뒷모습은 중앙을 나누는 램프가 은근한 포인트가 된다.

실내 역시 전통적인 편리함과 최신 기술이 균형을 이룬다. 시승차는 새들 브라운 인테리어였는데, 프리미엄 팩이 포함되어 퀼팅 나파 가죽 시트가 기본이다. 또 크래쉬패드 상단, 도어 암레스트 등 손이 닿는 모든 부분에 최고급 가죽이 쓰였다. 시카모어 브라운 리얼우드 장식은 진짜 나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무늬와 촉감이 따뜻함을 준다. 최근 여러 차에서 계기판과 센터 모니터를 하나로 이어 ‘첨단’의 느낌을 주려는 경우가 많은데 K9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다. 12.3인치 슈퍼비전 클러스터 안의 그래픽이 속도계와 회전계 두 개의 커다란 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역시나 고전적이다.


무엇보다 실내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잘 배치된 여러 물리적 스위치들이다. 중앙의 14.5인치 모니터는 센터페시아의 폭과 딱 맞아 안정감을 주고 그 바로 아래에는 모니터 기능과 연결된 오디오/내비게이션 조작 스위치들이 있다. 바로 아래에는 ‘모리스 라크로와’의 최고급 아날로그 시계가 반짝이고, 그 밑으로 공조장치와 열선/통풍 시트 등 온도 조절 기능이 모여 있다. 맨 아래 콘솔에는 전자식 변속 레버와 그 아래 주행모드 변경 스위치가 있고, 터치 방식으로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필기 인식 통합 컨트롤러가 들어갔다. 센터 콘솔 바로 앞에는 주차와 관련된 스위치들이 모여 있다.

최근의 추세가 실내를 단순하게 만들려고 터치 스크린을 넣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조작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K9은 대부분의 스위치를 밖으로 꺼내 쉽게 쓸 수 있다. 또 설명한 것처럼 연계된 기능끼리 같은 위치에 묶어 두는, 당연하지만 의외로 무시당하기 쉬운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다. 처음 차를 탔음에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 지 바로 찾아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 여기에 조금만 써보면 익숙해지는 ‘카카오i 자연어 음성인식’은 내비게이션 목적지 입력 등 번거로운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돕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리적 스위치로 기능을 조작하고 복잡한 일은 음성으로 명령하는, 최선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운전자를 위한 최신의 기술도 있다. 바로 ‘지문 인증 시스템’이다. 1961년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 제도가 시행된 이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만 17세가 될 때 국가에 지문을 등록한다. 이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질 만큼 지문은 개인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바꿔 말하면 지문만큼 확실한 보안 장치는 없다는 말이 된다.

스마트키 두 개를 모두 차 안에 둔 상태에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지문을 등록하는데 이는 스마트폰과 동일하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있는 감지장치를 통해 여러 번 입력을 하면 등록이 완료되는데, 스마트폰의 기아 커넥트 서비스를 통해 문을 열고 지문 인증을 하면 시동을 걸고 차를 운행할 수 있다. 예전이라면 신분증을 비롯해 현금이 두둑하게 든 지갑과 묵직한 열쇠고리를 갖고 다녔지만, 지금은 신용카드가 등록된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지문 인증과 함께 쓰면 보안과 함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14.5인치 센터 스크린에 펼쳐지는 증강현실 내비게이션도 첨단 기술이 편리함으로 이어진 경우다. 전방 카메라에서 촬영한 차 앞 부분의 영상을 4분할 된 스크린 중 3개에 실시간으로 띄우고 갈림길 정보는 물론 차로 이탈 경고와 과속 경고 등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준다. 물론 경고음으로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음악을 크게 틀거나 동승자와 이야기를 하느라 놓치는 일이 생긴다. 큰 화면에서 잘못된 부분을 분명하게 구분해 보여주는 증강현실은 실제 주행에서 큰 도움이 된다. 4분할 된 스크린 중 나머지 하나에는 오디오 정보 등 필요한 것을 띄우면 딱이다.


주행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편안하다. 315마력을 내는 V6 3.8L 자연흡기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함께 꽤나 고전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3.3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도 고를 수 있는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쪽이 더 좋다. 느긋하게 달리다가 큰 힘이 필요할 때 가속 페달을 꾹 밟아 회전수를 높이면, 그에 비례해 커지는 엔진음과 토크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차를 가속시킨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이렇게 출력을 내는 엔진이 달린 차를 타왔다. 익숙함은 낡음이 아니라 편안함이다.

물론 첨단 기술은 열심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선 K9에 세계 최초로 쓰인 전방 예측 변속 시스템이다. 주행모드가 스마트일 때 작동하는데 차와 주변의 다양한 상황을 감지해 최적의 기어 단수를 정해 변속하는 기능이다. 계기판 중앙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지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내비게이션의 지도 정보를 통해 차가 달리고 있는 위치가 곡선로, 경사로 및 과속 카메라가 있는 지역, 고속도로 합류 구간인 지를 체크한다. 곡선로나 경사로일 경우 도로의 경사와 곡률에 맞춰 기어 변속을 억제해 갑작스레 차의 속도가 빨라져 거동이 달라지는 것을 막는다.

고속도로 램프에 진입할 때는 일시적으로 스포츠 모드로 전환해 빠르고 안전하게 본선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방 레이더로 앞 차와의 간격을 재 가까워질 때 자동으로 엔진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이런 동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운전 자체가 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행 안정성이 높아지는 데다 실질 주행 연비도 높일 수 있다. 운전자가 특별한 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차가 가장 합리적인 상태로 달리는 것이다. 여기에 전방의 장애물을 예측해 감쇠력을 조절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더해져 편안한 달리기를 만든다.


이번 시승은 그간 이 차를 지켜보며 느낀 생각을 확인하는, 진면목을 보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00여 년 넘게 자동차가 발전하며 쌓인 긍정적인 유산과 첨단 기술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최신 트렌드를 쫓으며 그걸 취향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멋진 신기술은 이를 쓰는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을 때 유용하다. 특히나 과거부터 쌓여온 기술과 경험은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 미래까지 이어질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이 둘의 조합이 얼마나 멋진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K9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차가 새삼 대단하게 보이는 이유다.

글.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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