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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도 스포티할 수 있을까?

2021/02/18

소음도 없고 배출 가스도 없는 전기차는 자동차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웅장한 엔진음과 드라이빙의 열정을 영영 빼앗아 가버릴 얄미운 존재일까? 적어도 스포츠 드라이빙에 관해선 새로운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전기차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부분은 바로 가속 반응이다. 전기차도 오른발 끝에 가속 페달이 동일하게 자리하지만 그것을 밟을 때 일어나는 과정은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와 사뭇 다르다.


우리가 지금까지 타온 자동차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이렇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페달이 눌린 정도를 센서가 감지하고, 그 신호를 스로틀 밸브로 보내 밸브를 연다. 밸브가 열리면 그 틈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거나(자연흡기 엔진) 밀려 들어가기(터보 엔진) 시작한다. 이렇게 속도가 붙은 공기에 묵직한 피스톤 덩어리가 크랭크축의 회전력에 의해 실린더 위쪽으로 들어올려 압축한 후 연료를 분무하고 폭발이 일어나 그 힘으로 피스톤을 가속시킨다. 아직 끝이 아니다. 토크 컨버터는 오일을 휘저어 다른 임펠러를 회전시켜야 하고, 수많은 기어 세트가 맞물린 변속기를 통과한 후에 기다란 프로펠러 샤프트를 빙글빙글 돌리며 차체를 가로질러 구동륜까지 도달한 후 비로소 바퀴를 굴리게 된다.


전기차는 어떨까. 가속페달을 누르면 바로 모터로 전류를 주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퀴를 잡아 돌린다. 유체가 흘러가길 기다릴 필요도 없고, 연소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 엔진 내부와 변속기 쇠뭉치들을 비비고 힘을 잃어가는 부분도 없다. 저 수많은 단계의 생략이 주는 반응성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덕분에 전기차를 가속시킬 때마다 나의 뇌신경이 발바닥까지 나와 가속 페달에 아바타처럼 접속하는 환상을 느낄 정도다. 500마력대 전기차가 주는 가속 감성은 1000마력대 엔진 차량과 비슷할 정도다. 물론 200마력대 전기차라고 해서 반응 지연 속도에 차이가 있지 않다. 전류는 공기보다 빠르게 움직이니까. 즉각적인 페달 반응은 스포츠 주행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특성 덕분에 니로EV와 같은, 스포티한 성향이 아닌 전기차조차 기본적으로 무척 뛰어난 동력성능을 가진다.


바야흐로 고출력 시대다. 신차가 나올 때마다 조금 더 높은 출력을 선보이고 섀시 제어 기술과 타이어 기술도 좋아지면서 점점 자동차는 강력한 쪽으로 발전해왔다. 내연기관 차량들은 이제 두 바퀴로만 전달하기에 너무 큰 파워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제조사들이 사륜구동 기술을 브랜드화하고 판매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사륜 구동은 구동력을 1/4씩 잘게 나눠쓰기에 높은 출력을 타이어 접지 한계 안에서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차체 중앙을 가로지르는 샤프트를 배치해야 하고, 전후륜 바퀴의 회전수 차이를 보정해주거나 필요에 따라 전후 구동력을 조율해 줄 메커니즘도 탑재해야 한다. 기계식이냐 전자식 제어 방식이냐에 따라 장단점이 각기 존재하지만 토크의 재배분을 위해서 지연 시간이 발생하거나 설계 의도와 다른 반응 지체가 생길 수 있는 여지도 존재한다.


전기차의 사륜 구동계는 역시나 단순하다. 각 축마다 모터를 하나씩 설치하면 전후륜이 연결되지 않은 독립적인 네바퀴 굴림 시스템이 완성된다.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어 세트나 전자제어 클러치백의 도움도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코너링 중에 신속한 토크 배분 결정 과정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자유롭게 최적의 토크를 전달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 셈이다. 또한 이륜/사륜 전환도 너무 간단하다. 평상시 전륜 구동, 혹은 후륜 구동으로만 달리다가 필요시 사륜구동으로 전환하는데 걸리는 반응 시간도 없다. 전후륜을 동시에 구속하는 샤프트가 없기 때문에 각기 다른 토크와 회전수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전기차의 개발 단계에서 스포티한 움직임을 목표로 이런 특성을 이용한다면 주행모드에 따라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 성향을 달리 설정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잠시 오프로드를 시선을 돌려보자. 오프로드 역시 일반적 운전 범주를 벗어나는 재미를 위한 운전의 영역으로 도전이자 스포츠다. 오프로드에서 바위를 타고 넘거나 거친 구덩이를 빠져 나와야 할 때 필요한 것은 아주 느린 휠 스피드와 강력한 토크다. 내연 기관 오프로더들은 100~200rpm 수준의 낮은 회전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오프로드용 로우 기어라는 별도 기어를 장착해 이런 상황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전기차의 모터는 0rpm부터 최대 토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속 0.5km/h로 느리게 전진하면서도 최대 구동력을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험로 주행에서 차량을 아주 쉽게 추진시킬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낸다. 차가 경사에서 밀리더라도 절대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부수적인 장점이다. 이런 장점은 굳이 앞으로 출시될 차세대 전기차까지 가지 않아도 현세대 전기차에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장점들이다. 니로EV와 쏘울EV, 그리고 봉고III EV까지 기아의 다양한 전기차를 타본다면 정숙함 속에서 나오는 의외의 토크감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배터리를 비롯한 각종 구동계 부품이 낮게 배치돼 코너링이 좋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기대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스포츠카 플랫폼으로 전기차를 설계한다면 차체가 기울어지는 롤 포인트와 차량의 무게 중심점을 이용해 흥미로운 특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연기관은 엔진 자체의 높이도 높지만 엔진룸 안에 낮게 배치하는데 한계가 있어 무게 중심이 롤 포인트보다 높다. 하지만 만약 차체의 저중심화와 배터리 배치 최적화를 통해 무게 중심 포인트를 롤 포인트 근처로 낮추게 되면 코너링을 할 때에도 차체가 바깥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된다. 전자식 댐퍼나 에어 서스펜션, 전동식 안티롤 바 같은 첨단 장비 없이도 물리적, 공학적으로 더 나은 주행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부드러운 스프링을 사용할 수 있고 스포티하면서 최고의 승차감을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아의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 E-GMP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배터리와 구동계를 낮게 배치해 무게중심을 낮추는 것은 물론, 모델 특성에 맞춰 다양한 변형이 가능해 향후 스포츠 모델의 개발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 플랫폼이라면 곧 선보이게 될 CV는 물론 앞으로 스포츠 모델의 출시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위 내용을 토대로 다시 생각해보자. 전기차는 재미없는 존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전기차는 충분히 스포티할 수 있으며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아니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드라이빙 머신이 될 수도 있다. 당장 기대되는 것은 곧 기아가 선보일 새로운 전기차, CV다. 가장 진보된 전기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는 CV는 운전의 재미 면에서도 분명 남다를 것이다. 이전에 경험했던 기아의 전기차들 모두 훌륭했기에 완성도 높은 플랫폼에서 태어날 다음 전기차는 더욱 기대감을 높이게 만든다. 이 차를 만나게 될 날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강병휘(카레이서 겸 칼럼니스트)

해당 콘텐츠는 작성자의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는 기아자동차로부터 원고료를 지원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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